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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문화권력을 고발한다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401  
가부장제 문화권력을 고발한다

[여성신문] 2000년12월15일 605호


[기획]가부장제 문화권력을 고발한다



문화권력 해체만이 문학의 살길

“…이러한 상황은 기자들 특유의 남근적 권력주의와도 연관되어 있는데, ‘골치 아픈’ 작품은 힘을 행사하고자 하는 기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뭐야, 이거. 뭘 이렇게 잘난 체 하는 거야. 그들은 문학이 나긋나긋한 여자이기를 바란다. 가려운 데 긁어주고, 뭉친 근육 풀어주고, 절대로 잘난 체하지 않고, 수건 들고 칫솔 들고 다소곳이 기다리고, 고상한 체하지 않고, 적당히 못났고… 90년대 들어서 한국 문학은 부드럽고 멍청한 애첩의 지위로 몰려났다…”(김정란,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

지난 달 <조선일보> 문화면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다. 문학평론가 남진우씨가 계간 문예지 <문학동네> 겨울호에 게재한 ‘시인을 찾아서’라는 글에서 그간 ‘문단권력’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비판해온 김정란 시인이 오히려 ‘문단권력’을 휘두르고 있으며, 동료 문인에 대해 ‘내멋대로식 비판’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을 인용, 보도한 것이다. 이 기사에서는 남씨의 주장, 그것도 본문이 아닌 ‘보유’ 부분에서 언급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의 ‘김정란 죽이기’ 혹은 ‘안티조선 죽이기’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페미니스트임을 자임하는 여성 문학인을 중심으로 ‘수구적 문화권력’에 대한 비판이 서서히 일고 있다.

수구적 문화권력 논의의 장에 나와라

최근 가시화하고 있는 페미니즘 진영의 ‘문화권력’ 논쟁은 강준만 교수의 실명비판으로 촉발된 네티즌들의 자발적 ‘안티조선 운동’에 힘입은 바 크다. 특정 언론이 지향하는 정치적 성향은 차치하더라도 여러 차례에 걸쳐 문제로 지적되어 온 <조선일보>가 문화계 전반에 행사하는 막강한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귀결로 보인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작년 출간된 <조선일보를 아십니까?>(개마고원, 8000원)에 김정란(상지대) 교수가 기고한 ‘조선일보를 위한 문학’이라는 글이었다.

김교수는 이 글에서 양적 성장이나 상업적 성공은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해도 남성 문단권력자들의 평가에 휘둘려온 여성 문인과 여성문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문단 지식인의 반성과 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작 비판의 타깃이었던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의 권력자들은 아직까지도 어떠한 공식적 답변도 내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 교수의 문단권력과 문언유착에 대한 문제제기는 또 다른 페미니스트 논객 노혜경 시인과 경남지역 여성문화동인 ‘살류쥬’와 같은 대안적 매체와의 연대를 이끌어냈고, 이들은 현재까지 <조선일보>를 비롯한 문화권력 집단에 대한 비판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며 ‘반권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올해 조선일보사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제도의 개편을 둘러싼 공방, 박남철 시인의 여성시인 폭행 및 성추행 사건은 문화권력에 대한 비판적 담론의 생산을 부채질했다.

김정란 시인은 “안티조선운동은 한 언론사에 대한 거부운동이 아니다. 모든 전근대적·몰주체적 사고에 대한 거부이자 언어를 독점하고 집단정체성을 주입해 온 문화권력을 용인하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자발적 행위이다. 이 운동과 주체적 페미니즘이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은 미시권력에 대한 비판이 동일한 궤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우리모두’ 같은 안티조선 사이트가 박남철 시인 사건을 비롯한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를 보였던 것도 그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조선일보>를 비롯한 문화권력집단은 “주체적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여성문인은 가급적 배제하는 분위기로 일관해 왔던 것이 사실이며, 그들이 키우는 여성문인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거나 남성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여성작가들에 한정돼 있다”는 것이 김교수를 비롯한 반권력 진영의 주장이다. 결국 문화권력과의 싸움은 개인의 다양성을 지향하는 세계관의 싸움이라는 얘기다.

김정란·노혜경 등 외롭지만 의미있는 싸움

하지만 이들의 싸움은 외롭다. 물론 이번 남진우씨의 김정란 교수 비판에 대해서는 여러 매체가 “기회주의적 비평과 막무가내식 언어폭력”이라거나 “남진우씨와 조선일보 기자의 무리수로 인해 (그 둘간에) 유착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확증되었다”, “논쟁인가 인신공격인가” 등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이 적극적인 동참을 원하는 여성 문인들은 정작 뒷짐지고 있다. 오히려 이명원, 권성우, 전병문 등 진보적 남성 지식인의 참여가 적극적이다.

살류쥬 장정임 편집장은 “그간 주류에 속하는 문인들은 자칭 타칭으로 부정한 정권과 권력에 결탁했고 극우 보수적인 언론의 시녀로서 공동체적 삶을 외면해 왔으며 예비문인들에게도 공평한 게임의 규칙을 적용해 그 문학적 성취를 상찬하기보다 학연·지연을 통한 패거리 만들기에 바빴다”고 말했다. 또 “서울중심 제도권중심 남성중심 문단지형은 지연학연 없는 사람을 제외시켰고, 다수의 능력있는 여성문인들도 남성중심 문단의 끼워주기 정도에 만족하며 그들이 원하는 노래를 불러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여성 문인들의 자성과 동참을 촉구했다.

그러나 혹자는 이들의 활동에 대해 또 다른 권력투쟁으로 매도하기도 한다. 또 가뜩이나 침체돼 있는 문학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는 비판도 간혹 들린다.

노혜경 시인은 “여성주의적 글쓰기 행위는 남성들의 권력다툼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지 어떠한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목소리가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지 한 가지 목소리만 옳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제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더 많은 여성문인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도 요구된다.

문화권력 지형도 다시 짜자

“오늘날 문화권력 문제는 우리 사회의 파행적 근대화 과정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정치권력은 바뀌었어도 문화권력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이다. 문학의 위기라고까지 일컫는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려면 어떤 글을 써도 칭찬하는 닫힌 구조가 아니라 자유롭고 건강한 비판이 가능한 가운데 공정하게 경쟁하는 원칙을 회복해야 한다.” 김정란 시인의 이야기다.

이들은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으로 남성작가의 작품을 꼼꼼히 비평하는 것은 물론, 여성작가의 작품들에 대해서도 여성의 시각으로 다시 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살류쥬 동인들이 하고 있는 ‘유명글 똥침놓기’나 김정란·노혜경 시인의 비평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살류쥬는 특히 내년 1월에 발간할 무크지에서 ‘여성과 여성사이’라는 주제 아래 여성들간에 존재하는 차이를 분석하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김정란, 노혜경, 살류쥬의 문학적 성취와는 별도로 이들의 문제제기와 행보는 활기를 띠고 있는 시민운동과 맞물려 권위주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문화권력에 일정한 파급효과를 끼치며 문화권력 지형도를 바꿔야 한다는 담론 형성에 일조하고 있다.

최이 부자 기자 bjchoi@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