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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01-23 11:50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 를 읽고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827  
  김갑수의 <나의 레종 데트르> 를 읽고
         
                                                                장정임

 TV < 책을 말한다> 에 비교적 자유롭게 매력적인 말을 쏟아내던 그를 기억하기에 바쁜 중에도 단숨에 책을 읽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남은 생각은 동시대에 조응하며 살아가야하는 자들의  책읽기의 가벼움에 대한 고통이다. 스피디한 디지털시대에 감각이나 사고도 광속일 수밖에 없을지 모르나 책을 다 읽고 나면 그의  레종 데트르 (존재 이유)가 진실의 도달보다는 쾌락추구라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상당히 실용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용을 싫어한다. 그런 그의 내면과  표현된 말의 불협화음이 주는 이중성,  박학하게 들리는 그의 건너뛰기의 속도감이 책읽기라는 정서적 공간에서 상당히  금속적이고 기계적으로 다가오던 느낌 ----사실 나는 이 책으로 내게 부족한 서지학의 지식을 얻었으나 진한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할지의 안내서 역할은 하는 책이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독후감이 감동을 주지 못한다면 과연 그는 책을 감동하며 읽기나 한 것일까?

 저자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시인이자 음악관련 책을 3권이나 낸 음악 애호가이다. 아마도 음악관련 책은 이 책보다 감동적이지 않을까?  살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고 할 정도로 음악을 좋아하면서 책소개자라는 직업을 위해 책을 읽고 일을 위해 글을 쓴다. 그런 글을 모아 책을 냈다. TBS DMB 〈아름다운 오늘〉, KBS 〈라디오 독서실, KBS〈TV, 책을 말하다〉등  각종 방송에서 그는 다양한 책을 소개해 왔다.

 고전적 태도로 씌어진 책을 선호하는 그는 자신의 책읽기를 “ 시간의 공허를 견디지 못하는 흔적” 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바쁜 저자가 공허해서 택한 존재의 이유가 책읽기라고 한다. 그는 자신의 책읽기가 무목적이고 무지향적인 이유를 “ 실용에 대한 반발” 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의 느낌으로는 그가 무목적을 목적한 것이 아니라 직업상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고자 자신의 취향보다는 무목적을 의무로 가진 데서 나온 책읽기의 괴로움 그리고 책의 유행에 대한 민감성의 필요와 너무 많은 책을 대하다보니 저절로 갖게 된 직업적 메너리즘의 가벼운 독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인생에 대해 고전적 태도로  씌어진 것을 골라 주제별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 삶이 가르쳐준 교훈은 실용적인 것이 가장 쓸모없는 것” 이라고 말한다. 실용을 위해 책읽기를 한 그가 한 말로서는 이해하기가 오묘하지만 그만큼 삶의 구차함을 괴로워하는 (혹은 괴로워해야 한다는 의무의식을 가진) 그는 존재의 희망을 잃지 않으려 하는 자기애가 강한 사람으로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형식은 성, 인생, 시, 음악, 소설, 유행, 고전 , 운명, 일본소설, 여행  등 동시데에 나온 책을 중심으로 고전과 여타 다양한 견해의 책들과 연결시켜 자신의 생각을 마음 가는대로 피력해 놓았다. 다양한 생각을 가진 책들이 동원되고 있으나 저자의 생각이 가장 마음 가는 곳에 자주 치우치고 쉽게 다른 주제로 옮겨 가는 면에서 자유로움과 발랄함이 있으나 진지한 탐색보다는 대중성을 노린 가십취향의 독후감이란 느낌을 갖게 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독서가 자아를 찾아 헤매는 방랑 (오딧세이)이 아니라 유행을 찾아 헤매는 쾌락의 허무와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그처럼 그는 허무를 괴로워하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그가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카사노바를 삶의 멘토로 삶겠다는 말처럼 선정적이다. 예를 들자면 박학다식하게 사랑에 관한 온갖 자기폭로적 책들을 모아 다양하게 사랑을 이야기 하는 언설가운데 카사노바의 관음성교 까지도 인류의 사랑론이 다 녹아있다며 그를 자신의 멘토로 삼고 싶다는 식이다. 특히 이 글을 책 앞에 배치한 만큼의 계산된 상업성도 가지고 있는데 카사노바의 여성에 대한 문제는 차처하고 지적인 카사노바가 그런 글을 쓴 것은 미필적 고의라는 태도이다. 서갑숙등 성적 욕구를 가감없이 드러낸 사람들이 얻은 사회적 비난에 대한 옹호에 그친 감이 없지 않은 그의 책읽기는 그래서 상당히 독자적인 개성을 가진 듯 보이나 기실은 가십 취향적이다.
 자신의 말대로 이제는 사랑에 오리무중이 된 이 저자는 사랑이 덧없음과 허무에 대한  사랑이란 이름의 인간소외에 대한 개인의 반성보다는 우스꽝스럽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한국사회 윤리도덕을 탓한다. 한국여성들, 특히 잘난 여자들과 관계를 가졌다는 그의 가벼운 여성관은 지금 그 잘난 여자들 (무시당하기를 그처럼 싫어하며 물질보다 정신을 중시하던 그 여자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지 생각이 미치면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성적 표현행위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회는 불행하다는 방식으로 사고하고 표현한다. 그리고 자신의 글쓰기를 반역의 몸부림이 치열한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나 역시 자유주의자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자유의 주장이며 진보인지 아리송해진다. 인간이 없고 인간의 동물성을 극복하려는 이상이 없기 때문이다. 서갑숙이 고백은 에피소드만 남고 구성애의 가르침은 메시지만 남았다는 그의 평가처럼 돌쇠와 창녀의식을 가진 한국의 남녀들에게 그가 이 책에서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안타깝게도 내게는 “돈키호테를 멘토로”  만 남아버린 것 이다.

 오히려 태초에 먼지가 있었다는 부분은 온갖 기묘한 생각을 써낸 책 소개로 재미가 있다. <중국의 식인문화> < 전투폭격기 조정법> <먼지> <연경><흡연자를위한 책묶음> <흡연의 문화사> <아름다운 이야기> <시칠리아의 암소> <어느 무명철학자의 유쾌한 행복론> 등은그런 책들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책소개를 업으로 하는 그의 전문성이 빛나는 면이다.

  “멜로디를 넘어서” 는 음악감상의 전문가로서 그의 지식과 취향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소설 하나 둘 도 읽을 만한 소설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평론가나 독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모나지 않고 후광을 비춰주려는 책소개자의 자세를 벗어날 수 없는 그의 글은 무엇이 그의 진정한 생각인지 알수 없게 만든다. 신경숙 전경린으로 인해 한국문학이 풍성해졌다는 그의 말, 문학적 평판이 정당이나 사회단체처럼 한쪽에 의해 한쪽이 극복되는 관계여야 하는지 의심한다는 그의 현실추수적인 태도에 대해 일견동의하면서 일견 반발되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책 뒤쪽으로 갈수록 그런 생각은 점점 진해진다.  이 책은 사실 “ 어떤 책을 읽을까?”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 들어있는 책소개 실용서이다. 더 무엇을 바래리.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가치가 있다. 

  실용이 승할수록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경제원칙을 최선으로 하는 삼성연구소가 시읽기 강좌까지 하고 있다. 대학의 고급 인문학강좌에 유명 CEO 들이 참여한다고 들었다. 인문학에서 삶의 교훈과 치유를 얻는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것은 결국 “ 인간 존재” 인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나면 그처럼 인간을 탐구하는데도 인간이 없는 동가숙 서가숙의 무책임한, 책의 방랑기 같은 번다함과 , 저자의 허무하지 않은 삶에서의 허무한 포즈가 보인다. - 그것은 마치 자신의 쾌락주의에 대한 한 지식인의 자기연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것이 부디 나만의 느낌이기를 ---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나는 아직 수억권의 책을 읽었을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내공이 부족한지도 모른다는 헷갈림으로 이 책을 덮는다. 나는 이 책으로 많은 책을 소개 받았다. 그리고 그 책을 읽고 좀더 겸허하고 좀더 올바른 삶의 교훈을 얻는 것은 나의 몪이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