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  회원가입

  z07  
     회원게시판 
      
     수필 
     평론 


방문자정보

  • 오늘 : 10
  • 어제 : 65
  • 최대 : 900
  • 전체 : 368,454

현재접속자

 
작성일 : 04-06-09 14:30
어르신” 으로 박제된 젊은 할머니들 (이프에 실린 글입니다 )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628  
“어르신” 으로 박제된  젊은 할머니들

                                                    장정임 (김해여성복지회관장)

 
    할머니는 아름답다

 우리 회관은 22년전에 김해여성들이 계를 모아 지은 여성 놀이터이자 교육장이다. 그때부터 출입하던 여성들도  세월이 흐르다보니 노인이 되고 그러다보니 저절로 여성노인회관처럼 되어버렸다. 이분들의  연령대는 60후반부터 80중반까지 다양하다.  학력은 무학에서 고졸까지이고 집 밖으로 나와 친구들과 어울리며 온갖 취미교육을 받을 만큼  경제상태나 지식 면에서 못 나오시는 분들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아 보인다.

  김해는 각 문화의집이나 동민의집, 혹은  시에서 직접 운영하건  여성취미교실을 무료로 지원해준다. 그런 바람에 시간이 많은 여성들이나 여성노인들이 컴퓨터, 한춤, 스포츠댄스, 민요 등 하루에도 몇 가지의 배움으로  바쁘게 사신다. 김해여성복지회관 같은 자생적 기관은  운영비 보조도 없이 죽을 고생을 하지만 시로서는  년간 5~10억이 드는 <여성회관> 운영부담이 없어서인지 기껏 비싸봤자 5 천원에서 1만원 정도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여러 공간에서 서비스 하는 바람에 할머니들은 노인대학에 다니거나 노래나 춤을 배울 기회가 많다.

  이 할머니들은 아주 열정적이어서 배움에 하루도 쉬는 날이 없다.  80이 가까워도  꽃다홍  블라우스와 빤짝이 무용복을 입고 섹시하게 차차차를 추는 할머니나 소녀처럼 웃으며 실버여성대학을 오가는 이분들의 모습은  참 아름답고 생생하다. 이분들은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다니기도 한다. 이처럼  젊은(?) 분들을  그저 어르신으로 박제하는  우리 사회의 위선이 나는  참 미안스럽고 부끄럽다.

 이런 할머니들의 온갖 재능을 모아 우리회관 주관으로 <황옥실버문화축제>를 연다. 이 축제의 역사적 배경은 자신의 아들에게 자기의 성을 물려준 평등여성 허황옥 (가야국 김수로왕비)이다. 허황후 역시 차문화를 가져오고 정치에 참여하고 가야불교를 세운 여성으로서 할머니로 돌아가셨다. 이 여성의 묻혀있는 역사를 발굴하고 상대적으로 지체된 여성노인의 문화적 역량을 높여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는 사람으로 만드는 축제,  할머니들의 가치를 새롭게 재조명하며 잃어버린 여성역사를 복원하는 축제가 황옥실버문화축제이다.

 < 할머니는 아름답다> 란 플래카드가 온 거리에 내걸린 9월 말경부터 지난 10월 3~ 5월까지의 ‘황옥실버여성문화 축제’는 그야말로 수많은 시민 참여와 더불어 , 무대의 주인공임을 행복해하는 할머니들로  시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놀라운 축제’ ‘ 할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축제’ 라는  평가를 받았다.

 할머니들에 대한 가족의  관심도 적고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주려는 기회도 적어  의외로 사진이 없다. 그런 할머니에 포커스를 맞추는  실버필름페스티벌과 할머니의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시화전,  합창제 , 스포츠 댄스제 모든 배우가 할머니인 노인문제 연극, 할머니 취미전, 노인 복지전 , 김해지역 국공립 어린이집 어린이들의 할머니 그리기전 등으로  3일간 할머니들은 시민의 초점이 되고 무대의 주역이 되었다.  김해지역 대부분 여성단체의 참여와 관의 도움에 의한 김해 전지역 할머니들의 초대와 접대, 상담, 진료 등으로 김해의 고분박물관은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들로 3일간 들썩였다.
  할머니에겐 자긍심을 시민들에게는 할머니에 대한 색다른 인식을 심어준 축제는 .올해도 10월 3일에서 5일까지 김해 고분박물관 일원에서 펼쳐지니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원하시면  스텝으로  참여하시던지 놀러 오시기를 ^^     
 
            유일하게  성공 못한  할매 할배 미팅

  그런데 “몸 생명 자연” 주제의 고쟁이 벗기 퍼포먼스는 할머니들이 억압된 몸을 풀어버린다는 의미로서 ‘샘터에 고쟁이 벗어 걸기’로 재미있게 진행되었으나  ‘할매 할배 손잡고’  ‘할머니 할아버지 미팅 프로그램’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할머니에 비해 수가 훨씬 적은 할아버지와 외간 할아버지를 별로 반기지 않는 정숙하고 억압된 (?) 할머니들로 인해 할머니 데이트를 유도하려는  우리의 의도가  잘 먹혀들지 않아서이다.  손을 잡으라고 해도 안 잡고 내외만 하니 무슨 게임이 되겠는가? 할아버지들은 적극적이었지만  할머니들은 “ 아이고 영감 냄새난다” 라며 할아버지와 노는 것이 싫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아무튼  겉으로도 그렇게 보인다.

 성은 타인과의 일체감을 추구하며 자기가 살아있음을 확증하고,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성은 상호작용이며 인간의 교류이며 사회적 관계이다.  그런데 이창은 교수의 논문에 의하면 '멋있는 이성을 보면 여전히 좋고 흥분된다는 할아버지가  84%인데  비해  할머니들은 14.3%란다.  이성에 대한 삘을 억압하는 성문화로 사회화된 할머니들에겐 할아버지들보다 욕망의 표현에 대한 절제가 많게 마련이다. . 

  할머니들은 전혀 여성이 아닌 것 같이 스스로를 생각한다. 그러나  축제장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며칠을 보낸  40대  남성시인이 “할머니들이 정말 아름답다 , 고 했다 .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그렇지’  여자가 보기에도 노래하고 춤추고 연극하고 사진의 모델이 된 할머니들은 참으로 섹시하고 멋졌다. 넉넉하고 아름답고 당당하고 ----누가 이분들을 늙고 매력 없다고  말하는가? 내 눈에는 젊음이란 무기 하나로 사는 애송이들보다 훨씬 매력이 풍부한  분들이다.

 그러나 늙은 여자에 대한 폄하는  “꽃이라도 십일홍 되면 오던 봉접도 아니 온다” 는 속담처럼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흔하다.  늙으면  백발이나 지팡이 늘어진 피부 등으로 다수 집단과 식별 가능한 특성을 갖고 있고  이 식별성은 다수집단에 의한 차별로 나타난다. 그리고 다수는 차별을 정당화하는 온갖 이론을 만든다. 시나 소설에서도 늙은 여자는 마녀 아니면 추악한 노추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독일에 사는 닥종이 화가 김영희도  “ 남녀평등이라며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무거운 짐을 척척 들고 고장난 기계도 빨리 고쳐내야 하는 사회임에도 여자는 ‘섹시해야 한다’는 통념으로. 늙은 여자는 길 가던 개도 안 쳐다볼 정도로 구석으로 몰아두는 경향이다.” 라고 한탄한다. 독일같이  남녀 평등한 곳도 그런 모양이다. 여성노인을 그리 대하면서도 도덕적 요구는  많다. 좀 튀는 옷만 입어도  “늙은이가 나이 값이나 하라”고 하고  성적인 태도를 약간만 드러내도 “주책 맞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노인도 욕망이 있고 사랑의 욕구가 있는 존재다.

꿈에서나  섹스 하는 할머니들

  여성노인의 성은 남성노인에 비해 억압된 성이고 그것도 14:84 정도로 억압된 성이다. 우리 회관의 실버여성대학 수업에서 <죽어도 좋아> 영화를  해설까지 덧붙여 드리며 성적 쾌락을 죄악시 말라는 교육도  하였건만 “ 아이고 추잡스러워라, 무슨 영화가 저렇노?  저 영감 할매는 자식도 없나?  내사 이런 곳엔  부끄럽와 더 이상 몬 오겠다”  라며 회관을 안 나오는 분이 몇 분 계신다. 많은 할머니들이 그분들처럼 극단적인 표현은 안했지만 민망스러운 얼굴을 했음은 당연하다. 나중에 간사 말을 들으니 성관계 장면이 희미하게 처리되어 잘 안보이니 기계를 잘 다루어 빨리 잘 보이게 해달라고 성화를 하셨다고 한다. 이런 모습에도 할머니들의 이중적인 성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성은 젊잖지 못한 것 더러운 것이라면서도 욕망되는 무엇인 것이다.

  그런 경험 때문에 그다음 성원학교(노인 초등과정) 시간엔 < 죽어도 좋아> 대신에  임권택 감독의 < 춘향전>을 보여드렸다. 구성진 우리가락 창과 젊은이의 예쁜 사랑모습이 마음에 드셨던지 좋아라 하셨다.  할머니들은 대부분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가슴 속에 꼭꼭 숨겨두고 산다.  이분들에게 성은 그저 등을 긁어주고 함께하며 무릎을 베는 눕는 것일지라도 나누어서는 안될 것, 내색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니 노후가 쓸쓸하고 무채색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  아주 어렵사리 속내를 열어도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좀처럼 깊은 마음을 알 수가 없다.

  오래 전에  홀로 되어 자녀를 다 키워 제법 큰 손자도 있는 할머니 한분이 며칠 전 꿈에 남편과 성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깨고 나서도 그 여운이 남고 좀 오래 잠을 안 깼더라면 싶더라는 것이다. 생시처럼 느껴지는 그 몸짓과 살내음이  참 편안하고 좋더란다. 그러자 67세의 한 할머니도  그런 꿈을 가끔 꾼다는 것이다. 자기는 그런 꿈을 꾸고 나면 몸이 아프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 아이고 늙은이가 무슨 잠자리 생각이 나겠느냐? ” 고 펄쩍 뛰다가도  새로운 상대를 만나 결혼생활을 하고 노후를 즐겁게 지낸다는 할머니의  이야기엔  진한 부러움도 표시한다.  ‘저런 사람은 보통은 아닌 사람이다, 라면서도 “ 나도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 라고 말끝을 흐린다. “ 자식도 쓸데없다” 라는 말에 묻어있는 외로움과 소외감을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해주지도 않는다.
  할머니들은 성적 욕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배출할 출구가 없는 것이다. 어쩌다 자칫 체신을 잃으면 그나마 자녀의 정에 의지하고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잃을까 두렵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자신의 욕망을 감추는 줄도 모른 채 꽁꽁 감추고 산다. 그래서 아픈 곳도 많다.
 
  할머니들은 결코 죽어있는 몸이 아니며 성녀도 석녀도 아니다. 서정주 시에 나오는 이생원댁 마누라 오줌줄기가 엄청났듯이 진성여왕도 주변에 2~3명의 꽃미남을 거느렸고  당태종의 아내 측천무후는 남첩이란 제도까지 만들었다. 청나라 서태후도 8명의 꽃미남을 늘 주변에 두고 자신을 즐겁게 해주는 자에겐 상과 권력도 주었다. 90세의 할머니가 20대 초반의  청년과 결혼한 해외토픽에서도  보이듯이 노년이라도 돈과 권력을 가진 여성은 성을 즐긴다.

  서른다섯에 버림받아 다섯 자녀를 키우고도 아무도 찾지 않는 달 셋방에서  혼자 사는 65세의 이모 할머니는 전셋돈을  아들에게 다 빼 주고 날마다 취로사업에 나가거나 닥치는 대로 일하며 산다. 언뜻 보기엔 70이 되어 보일 정도로 늙었다. 쉬는 날이나 비 오는 날 혼자 누워있으며  몸도 아프고 슬퍼진다. 그럴 때면  영감이라도 얻었으면 싶다. 둘이 살이라도 붙이고 누워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쉽게 허락이 안 된다. 너무 외로워서 어쩌다 공원 앞에서 출발하는  묻지 마 관광버스를 타면  파트너로 정해준 모르는 할배가 온몸을 주무르려 든다. 더러워서 피하는데 술을 먹고 주접을 떠는 모습이 추하게 느껴져 불쾌하기만 하다.

 할머니는 한평생이 서럽다. 홀몸이 되어 온갖 고생으로 고등학교까지는 가르친 아이들이 하나같이 떠나버렸다. 뭔가 필요할 때나 올뿐 전화를 하면 피하고 전화번호를 바꿔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런 자식이 있다고 생활보호대상자도  안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럽다.

 어떤 할머니들은 묻지 마 관광지에서 다른 남자들과 잠을 자기도 한다. 이 할머니 자신도 그런 여자들이 이상하게 느껴지고 약간은 부럽기도 하다. 파트너와 같이 방을 잡아 나가는 할머니들 외엔 모두 한방에 모여 잔다. 그런 여행이나마 이 할머니에겐 삶의 활력소가 된다. 

 62세의 노래 잘 부르는 명랑 활달한  김 할머니는 몸집이 작고 아담해 마치 50대 중반처럼 보인다. 얼마 전까지 공장에 다녔으나 퇴직하고 아들과 함께 사는데 낙이 없어 노인 상대하는 건강보조식품 약장사가 올 때마다 따라가 놀다 온다. 누가 그처럼 즐겁게 해주겠냐? 만담하고 노래하고 먹을 것 주고 ---어떤 할머니는 그들의 친절에 녹아 천만 원 어치의 물품을 샀다고 한다.  외로움보다 무서운 것은 없다. 그나마 성격이 명랑해 어디나 노는 자리에 끼어들어 춤추고 노래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직 젊다고 느끼지만 자식 이목 때문에 재혼이나 이성교제는 생각도 안한다. 밤에 가끔 꿈이나 꾸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 늘 쓸쓸하다. 그저 등 긁어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싶다.

        진짜 효도는 이런 것 -어머니의 사랑을 돕는 일 곱아들

  성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당연한 것이니 노인도 즐기도록 도와야 한다. 기왓장에 웃는 얼굴을 새긴 낙천적인 신라사람들은  어머니의 쾌락에 대해 너그러웠다. 언젠가 그 일부가  발굴된  신라 경주 문천(蚊川)에 걸렸던 길이 55m의 대형 석교 효불효교(孝不孝橋)는  어머니가 정부를 만나고자 밤마다 물길 건너며 고생하는 것을 보고 일곱 아들들이 놓아드린 다리라 한다. 신라시대는 그만한 정사는 자식들이 동조하리만큼 자연스러웠다고 한다.

 <조선전기 가부장제와 여성> 이란 책의 공동필자였던 조은은  부인의 재산권 약화가 어머니의 지위 강화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처럼  경제 문화 정치적 힘이 여성에게 없을 때는 더욱 성스런 어머니 역할을 강요받았던 것이다.  우리의 희생적이고 신사임당스러운 모성신화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성적 욕구조차 눌러두기를 강제당한  “힘없는 여성” 의 투영일 뿐이다.  노인의 성생활 인식이 남녀간에 커다란 차이가 나는 것은  여성이  경제적 종속과 더불어 성의 종속 상태에서 성적 자율권을 상실한 채 수동적인 성 태도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도록  사회화된 이유밖에는 없다. 

  비뇨기과 의사 정동철은 65세 이상 남자노인의 89.4%, 여자노인 중 30.9%가 성기능을 유지하며, 66세부터 70세 노년층의 62.2% 가량이 월간 1~5회의 성관계를 가지며 노인의 상당수가 성을 통해 삶의 존재를 확인한다고 말한다. .
 여성노인도  성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만족시킬 만한 구체적인 방법의 사용은 별로 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여성노인들은  존경스러운 어머니 할머니 어르신을 강제하는 사회에서 일찍부터 성적 욕망을 거세당한 채 살아왔기에 가끔 꿈에서나 섹스를 할뿐 감히 사회와 가족의 기대를 저버릴 만큼 욕망에 자유롭지 못하다.  노인의 성에 대한 부정적 사회심리는  성적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려는 마음을 방해한다.  이렇게 우리가 짓누르고 억압한 할머니들의 숨겨지다 못해 퇴화한 성은 노인으로서 당연하고 어른스러운 것인가?


할머니 들을 자유케 하라.

 할머니들도 행복해지고 싶다.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고 싶다. 우리 할머니들이 한 연극 <황혼연가>에서 아들 며느리가 재산 때문에 재혼을 방해하자 많은 관객들이 분노한 모습에서 나는 할머니들의 진심을 본다.  자식들이 부모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순전한 이기심 때문이다. 흠 없는 가족, 축나지 않는 재산에 대한 욕심만 없다면  행복을 방해할 이유가 없는데도 당연하게도 할머니들을 애보는 사람 , 집지키는 사람, 박제된 어머니로 유폐시킨다. 그리고도 모신다는 말을 반성도 없이 쉽게 사용한다.
 할머니들을 자유롭게 하라. 만나고 사랑하고 실패하고 시작할 모든 자유를 주자. 우리 사회의 가장 외롭고 권리 없는 소외집단 할머니들에게 사랑의 기회를 드리자. 만남의 자유 동거의 자유 , 자위의 자유  이혼의 자유 , 재혼의 자유를 ---

 보브와르는 말한다. 한 인간이 노년에도 인간으로 남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그가 해왔던 일을 하고 싶은 일을 그대로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성은 그가 해왔던 가장 자연스런 일이 아닌가?  . 우리도 곧 늙는다. 아무리 의학적 기술이 발달해서 오래 살아도 사랑도 못하게 하는 사회의 삶이 어찌 행복이란 말인가? 성적 자율권이 없이 자식 눈치나 보는 우리 어머니들이 훗날 우리 모습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항상 인간으로 대우 받아야 한다.

 우리가 할머니들을 박제된 존재로 생각할 때 노후의 성교육 기관이나 상담 시설을 만들 생각을 못하고 자연스러운 이성교제나 재혼이나 동거의  기회도 방해할 것이다.. 보건소나 의료기관에 노후의 성상담 전문가도  배치하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 파이팅 !  의학은 발달하고 아직 시간도 많습니다. 부디 즐기며 행복하세요.